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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삼 대통령의 강렬하고 명징한 “호주 발자취”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가 국내외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국 언론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삶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큰 궤적을 남긴 투쟁성과 결단력을 갖춘 정치 9단, 세계화 및 개방화를 이끈 지도자”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는 역대 전임 대통령 가운데 해외동포문제에 가장 가시적인 업적을 남긴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 왔습니다.

특히 호주한인동포사회에 남긴 그의 업적은 현대사의 매우 중요한 궤적이었습니다.

호주한인동포사회의 양적 팽창의 기폭제이자 기반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 제도였고 그 제도를 체결한 주인공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박정희 (1968), 노태우(1988) 대통령에 이어 호주를 국빈 방문한 고국의 세번째 대통령이었던 고인은 당시 폴 키팅 연방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간의 워킹홀리데이 비자 협정을 체결키로 합의했습니다.

양국 정상회담을 마친 후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업관광사증협정 (워킹홀리데이 비자 제도) 체결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폴 키팅 총리께 이 제도가 빨리 시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당시 톱 뉴스의 관련 기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행 첫해인 1995년 워킹홀리데이 비자제도로 호주를 찾은 한국인 청년은 단 250명에 불과했지만 몇 해전 호주 달러화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당시 연 4만 명 선을 돌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제도가 시행된지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해에 이 제도 도입의 주인공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 존 하워드 당시 연방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우리의 전통 민요 아리랑 음악이 ABC-TV를 통해 호주 전역에 울려 퍼진 가운데 제막된 호주한국전참전기념탑 건립을 추진키로 한 주인공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명사처럼 된 ‘세계화’ 역시 호주 방문동안 선포된 바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호주 방문 수행 기자단과의 조찬 회견에서 ‘세계화 선언’을 발표하면서 “호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를 구상했다”라고 언급했고, 이로 인해 고국의 일부 언론들은 ‘비행기 구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가지 잊지못할 사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호주 기간 동안 ‘교민청’ 신설에 대한 여론이 제기됐고, 이 점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른바 문민 정부는 법리적 검토 작업을 거쳐 교민청 역할을 수행할 재외동포재단을 1997년에 발족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시 호주 대사였던 권병현 씨는 이후 주중 대사를 거쳐 재외동포재단의 2대 이사장으로 임명된 바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들어 “재외동포재단이 이벤트 회사로 전락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고국의 국회를 중심으로 해외동포사회에서는 재외동포청 설립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별세를 계기로 고국 정부의 재외동포정책이 행정편의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톱 미디어 그룹 발행인/회장 이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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