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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옥 칼럼] 그게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은희경의 소설 <마이너리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인생이 오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봄이 인사를 하는 듯 마는 듯 하고 떠나가며 여름을 데리고 오더니 어느 새 폭염의 태양을 거두고 가을의 문을 열더니 성큼 내 인생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겨울을 바라보게 한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뒤돌아 볼 시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저 그렇게 살아온 하루 하루의 삶, 생각 없이 조금씩 흘려보낸 그 세월들이 바로 당신이 만들어 낸 당신의 인생이다. 만족하는가? 이만 하면 잘 살았고 생각하는가? 보람이 있고 가치 있게 사용했는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인지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의 인생은 죽죽 뻗어가기보다 꼬이고 지치고 방황하며 그럭저럭 보내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랑하고 격려하며 나누어주기보다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안에서 내 것을 챙기느라 선을 긋고 밀어내고 정죄하며 살았는데 자기는 열심히 잘 살았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를 살펴보며 자신의 자태를 다듬기보다는 마음대로 상대편의 죄과를 묻느라고 수선을 떨고 그럴듯한 자기 의를 주장하느라고 목젖을 떨며 열을 올린 경우가 적지 않다. 용기있게 포기하거나 사과 한 번 의연하게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투덜대며 삶을 이어왔고 모른 척 지어온 자질구레한 죄들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들 모두 공평하게 또 한 계절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계절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시에 표현된대로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고 인생은 그저 그런 통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내온 지난 세월이 그렇게 하잘것없는 존재인 나를 인식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 데 너무 멀리 돌아온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며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

그러나 사랑하는 벗들이여! 너무 힘들어 하지 말라. 끝은 시작의 다른 말이고 허무는 의미를 향해 솟구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무엇이든지 시작은 바로 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존재였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소망의 빛은 비추이기 시작한다. 그런 순간에 단순하게 마음을 먹고 몇 가지만 삶에 적용해 보아도 조용히 확실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인생이다. 첫째 그냥 겸손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라. 물론 무신론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거부반응을 일으킬지 모르지만 무신론자가 더 큰 믿음과 확신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에 신의 존재를 증명할 그토록 수많은 것들을 모두 부정하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무 증거도 대지 못하면서도 맹목적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 보다 강한 믿음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를 지은 분을 알고 그 앞에 겸손히 설 때 자기를 알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인생의 순리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면 사람은 인생을 다시 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하고 그저 살아간다. 그저 그렇게 스러져간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찾은 사람은 그분이 만드신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고 자기만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내게 된다. 하나님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가운데 창조의 신비를 여셨다. 그분은 우리 인생 속에서도 그렇게 일을 행하신다. 우리 속에 운행하시면서 빛을 주시고 질서를 주신다. 허무의 공간을 채우시고 모든 것들로 제 자리를 찾게 하신다. 목적을 주시고 그것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역할과 기능을 주신다. 이제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존재하게 하신 분에게 질문해보라. 그분의 음성이 들려오고 삶이 다시 충만해지게 될것이다. 존재의 의미와 이유가 삶을 채울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그 분의 목적이 담긴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런 인생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그 분을 통해 인생들의 삶을 새롭게 하신다. 죄는 용서하시고 죽음은 멸하신다. 실패는 성공으로 바꾸시고, 좌절은 소망으로, 회한의 종말은 희망찬 새 출발로 변화시킨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게 하시고 새 사람을 입게 하신다. 육신을 따라 살던 사람을 영으로 인도받는 신령한 사람으로 만드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사람은 속상한 과거가 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안에 새로운 기회와 미래가 있다. 하나님은 <마이너리그>인생을 <메이저리그> 인생으로 뛰게 하신다.

 두번 째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보라. 인생이란 5-10% 정도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중요하지만 나머지 90-95%는 그렇게 일어난 일들과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차피 타락 이후의 인간은 병들고 늙고 죽는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고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들 투성이의 삶일 수 있다. 그런 당신의 삶에 대해 진솔하고 정직하게 직면하고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꿈을 접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말라. 인생의 모든 일들에 대해 긍정적이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지금 태도를 바꾸어 보라. 미래에 주어질 막연한 행복만 고대하지 말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인생의 보험을 신뢰하지 말라. 지금 태도를 바꾸고 지금이라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행복이 선택이라는 말은 태도의 문제라는 말이다. 마음 속에 긍정과 자신감, 지속적인 인내와 변함없는 헌신을 인생의 열쇠로 삼는게 중요하다. 세상은 당신의 삶 속으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사하고 인생은 폭풍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것들은 나를 중압감에 시달리게 하고 때론 놀라게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처럼 느껴져서 인내와 평정의 기술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무런 보장도 없이 내일이 다가오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고 내일도 역시 마찬가지일거라는 패배감이 마음을 채우고 불확실과 불안의 안개를 뿜어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상황과 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당신의 시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믿음의 긍정과 감사로 환경을 받고 직면하면 돌파하게 되고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가장 많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내 한계를 뛰어 넘게 하는 것은 전능자와 함께 뛰는 이인삼각경기라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 인생에 모셔진 사람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다가오는 미래의 날들을 예수 안에서 새 삶으로 채우기로 결단해 보지 않겠는가?

정기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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