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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무늬/김희진] 만남의 여운

             

                                                                                               김희진/글무늬문학사랑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만남을 위해 천안에서 부산가는 KTX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도 처음 가 보려니와 이렇게 빠른 기차도 처음 타 보았다.  25년만의 만남을 2시간30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설레었다. 5년 전 카톡으로 소식을 전하며  사진으로 얼굴을 보긴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25년 만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먼저 눈물이 앞설 것 같다. 아니 서로 얼굴을 보고 웃고만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기차는 부산역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친정어머니는 9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셨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이모가 나에게 있다.  막내로 태어난 이모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어린나이에 취직을 해야했다. 험난한 세상에 굳은살 박힌 몸과 마음의 아픔을 견디며 혼자서 잘 살아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지 이모는 일찍 결혼을 선택하여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한지 10년만에 남편의 폭행을 견디지 못해  어린 자식을  떼어 놓고 이혼을 했다. 그후 이모는 소식을 끊고 행방불명이 되어 집안 식구들을 안타깝게 했다. 20년이 지난 어느날 부산 어느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이모가 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이 왔다.  간 이식수술을 했는데 다시 암이 재발하여 이제는 간을 통째로 이식해야만 살수 있다고 했다. 그때 그 소식은 외가집 식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KTX기차는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하여 많은 사람들을 꾸역꾸역 잘도 토해냈다. 천안역에서는   순식간에 안으로 흡입 당하는 바람에 처음 타는 KTX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내려서 그를   자세히 바라보니 몸집은 매끈하고 얼굴은 돌고래와 닮은 듯 했다. 돌고래 중에서도 세계에서 제일 작고 멸종위기에 있다는 바키타 돌고래의 모습이었지만 몸체는 웅장하고 듬직했다. 낯선 곳에 내려주고 “어서 잘 다녀오라”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인자하고 편안해보였다.

 

멀리서도 금방 이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친정어머니를 닮은 모습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릴 적 함께 놀던 그 모습이 눌러쓴 빵모자 사이로 은초롱처럼 굴러 나왔다. 몇 분의 시간은 서로의 모습에 익숙하게 했고 세월의 무상함은 타고온 KTX기차와 함께 멀리 떠나 버렸다.

 

이모의 입술이 열렸다. 그동안 혼자 살면서 유방암 수술도 했다.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때는 이미 간이식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흔쾌히 간을 주었고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행복도 잠시뿐 3년이 지난 후 수술한 곳에 암이 재발되어 간을 또 통째로 이식해야만 했다. 눈에는 황달이 왔고 몸은 파랗게 변해갔으며 가쁜 숨소리는 두렵기 한량 없었다. 이제는 뇌사자의 간이식을 죽음과 싸우며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릉에서 간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왔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생명을 연장받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기도는 몸과 마음에 어느 약보다도 기쁨과 치유로 감사함으로 옷을 입히고 단장해 주었다.  

항암치료와의 싸움은 계속 되었지만 마음의 단단함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갔다. "내가 죽으면 암아 너도 죽어. 조용히 그 자리에서 떠나든지 그냥 얌전히 그자리에 있어." 암에게 협박도 하면서 이제는 민둥산머리에 쓴 가발이 훌러덩 벗겨져도 부끄럽거나 슬프지 않다. 또한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 바이러스를 전해주는 담대함도 생겼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아픈사람 맞아요?" 라는 것이란다.  

 

돌고래를 닮은 멋진 KTX 는 두팔을 벌려 나를 번쩍 안아 내자리에 앉혔다.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지 다 알고 있는냥  연신 인자한 미소로 나를  따듯하게 품어 주었다. 스치는 풍경마다 함께 공감해 주었다. 이모와의 애틋한 헤어짐의 아쉬움을 아는 듯 긴꼬리의 여운을 남기고 그는 떠나갔다.

이제 어두운 과거를 극복한 이모는 내 가슴 한 켠에 이웃을 밝히는 등대지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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