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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옥경] 전에 살던 사람들

금년은 많이 더워서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될까 염려되었지만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기로 했다. 숲 속에 들어가 홀로 생활해보는 것을 꿈꾸어오던 소로우는 1845년 3월 말 드디어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을 짓기 시작했다. 7월에 완성해 살면서 느낀 것을 표현한 묘사는 촉촉한 이슬비를 손 안에서 굴리는 기분이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이라는 장을 읽고 나약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음의 문장이다.

“내 집이 차지하고 있는 땅에 과거 어느 때에라도 집이 세워진 적이 있는지 여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대의 도시 자리에 다시 세워진 도시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그곳에서는 건축 자재란 폐허에서 뜯어오는 것일 터이며 정원은 묘지 자리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 곳은 하얗게 바랜 저주받은 땅이며, 그러한 일이 불가피해지기 전에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숲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했고 그렇게 나 자신을 달래는 가운데 꿈나라로 빠져들어갔다.”

내가 28년 동안 살았던 터에는 지금은 고급 노인 양로원이 들어서 있다. 이민을 와서 남편을 의지하고 살던 때였다. 집 앞면은 좁고 뒤는 긴데 척박한 땅에서 감자 넝쿨이 딸려 나오는 것이 촌스럽기만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집에 돈을 많이 투자할 여건이 아니었다. 그 집에는 <게티>라고 불리는 이태리 노인이 혼자 살다 어수룩한 우리를 만나 팔고 떠났다. 옆집 노인을 만났더니 자신도 이태리에서 왔고 게티의 부인이 억척스럽게 일을 잘하고 건강해 보였는데 암에 걸려 죽었다 했다. 나는 뒷마당에 내려가 주변을 서성이며 그녀 생각을 했다. 옷을 탁탁 펴서 널고 난 후 바람에 따라 춤추듯 돌아가는 빨래의 회전을 보며 그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보다 앞서 이 집에서 살다 간 그녀와의 인연을 그리워하며, 투병 생활에 지칠 때 뒷마당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진이 남아 있다면 구해 보고 싶었다.

나는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6년을 더 살다 그 곳을 떠났다. 짐을 정리 하다 남편의 가방에서 한 묶음의 사진을 보았다. 전에 살던 집은 구식 양로원이 왼쪽에 있고 경계는 나무 펜스로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양로원 측이 감독 기관의 지적을 받은 듯 펜스를 새로 해야 한다며 공동으로 돈을 내자고 했다. 옆집 이태리 노인과 남편이 대답을 안하자 두 집을 펜스 법을 적용하며 버우드 로컬 코트로 불러냈다. 우리 집과 옆집 땅의 펜스는 양로원과 연결이 되어 있고 우리 집은 양로원에 파묻혀 있는 꼴인데 집을 살 때는 생각지 못했다.

옆집 노인은 겁이 났는지 보이지 않았고, 양로원 측으로 매니저인 아들과 우리 가족만이 법정에 참석했다. 펜스를 찍은 사진과 비디오까지 준비해 갔지만 공동으로 돈을 내어 철판 펜스를 했다. 그 후 양로원 주인은 보기도 싫었다. 정부의 방침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현대식 이층 건물로 짓는다며 우리 집과 옆집을 산다고 중개인을 넣어 시도했지만 팔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옆집은 재빨리 팔고 떠나 허물고 나니, 잡초가 우거지고 밤마다 고양이가 우는 공터가 되었다.

양로원이 재벌 회사에게 팔렸다. 한 동 더 증축할 예정이라 우리 집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도 팔고 떠났다. 우리 집 현관이 있던 곳은 양로원에 입주한 노인들이 바람을 쏘이는 장소로 바뀌었다.

나무 펜스가 철판 펜스로 바뀌고,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거나 저 세상으로 떠나도, 남아있는 나무 펜스 사진 속에는 이민자의 서러움이 녹아 있다. 혼신을 다한 남편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전에 살던 사람들이 했던 일이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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