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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무늬 한나안] 복분자 이야기

복돌이는 외손자 예명이다. 올해 일곱 살로 시에틀에 산다. 나는 복돌이를 볼 때면 복분자 생각이 난다. 딸이 결혼하여 5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안 되어 은근히 걱정되었다. “ 엄마 우리 아이 가지려 타일랜드 여행가요. 스트레스 안받고 지내면 아이 생긴데 ” 하며 딸은 임신촉매여행을 가기도 하고, 임신에 도움 된다는 음식을 구해 먹기도 하며 임신을 고대하고 있었다.

2012년 여름, 서울 나들이 때 일이다. “형님, 우리 딸 복분자 먹고 임신해서 아들 낳았어요, 복분자 진짜 임신에 효과 있어요” 하는 올케 말에 나는 솔깃했다. 당장 복분자 농장으로 전화하였더니 싱싱한 복분자가 곧바로 배달되어왔다. 농장에서 막 따온 복분자 5kg을 어떻게 미국으로 가지고 가야할지 고민이었다. 싱싱한 과일 상태로는 미국 공항을 통관이 어려워 고심 끝에 한약방에서 엑기스로 만들어 작은 비닐 팩으로 패킹해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시드니로 곧 바로 가려던 비행기 스케줄을 시에틀을 거쳐 가는 일정으로 변경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딸 부부에게 서울에서 복분자 엑기스 가지고 왔다고 하였더니 딸은 “엄마는 그렇게 남의 말을 잘 믿어요, 이건 과일일 뿐인데 무슨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딸은 복분자 효과를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 딴에는 여행일정을 바꾸면서까지 딸을 위해 친정엄마 노릇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복분자를 시큰둥하게 여기는 통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엄마가 가지고 온 것이니 먹어보라고 설득하여 딸은 잠자기 전 한 팩을 마셨고, 아침에도 마지못해 또 한 팩을 마셨다.

딸 부부와 함께 2010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캐나다 위슬러 블랙컴(Whisler Blackcomb)으로 향했다. 밴쿠버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Sea - to - Sky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쯤 시원스레 달렸다. 휘슬러는 두 개의 높은 산(2284m)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 산자락에 위치한 북미 제일의 스키 리조트 빌리지이다. 인구 10,000 명 남짓의 소도시로 인공 설 제조시설이 매우 잘되어있어 높은 산들이 눈으로 덮여 있고 여름철에도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높이 솟은 두 산의 정상을 잇는 지지대가 없는 Peak to Peak 곤돌라 안에서 관람하는 경치는 비경이었다. 리조트의 고급스러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바닥 전체를 유리로 되어있는 케이블카에서 보는 경치는 사방이 아름다웠다. 빌리지 거리를 걷노라면 색다른 산골마을의 정취가 풍겨왔다. 어느 스키장에서도 볼 수 없는 국제적인 동계 스포츠의 메카로서 휘슬러 빌리지의 활기와 분위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연말연시에는 휘슬러 블랙컴을 찾는 것을 집안의 전통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다. 스키와 리프트를 즐기고 모두 모여 신년 파티를 여는 환상적인 풍경들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높은 산 정상에는 눈부시게 따가운 햇빛이 키를 넘게 쌓인 눈 위에 내리쬐고, 여름과 겨울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시애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딸은 배가 약간 아프다면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불현듯 복분자 때문일지 모른다는 자괴감이 엄습했다. 강제로 마시는 걸 보기가 사위 앞에서 민망하고 복분자를 괜스레 가지고 왔구나 하는 생각에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시드니 도착하여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이다 “엄마 나 임신했어.” 기쁨에 목소리가 콩 튀기듯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실 복분자에 대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엄마가 가지고 온 복분자 덕분인가 봐.” 하는 딸아이 목소리는 딸의 숙제를 덜어준 듯 가분이 뿌듯했다. 나중에 의사에게서 들은 얘기는 복분자에 함축되어있는 고농도의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체내의 호르몬 발런스 변화를 주어 임신하게 되었을 것이라 했다.

교회 점심시간에 딸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 딸은 임신이 안 되어 8년째 마음 고생하고 있는데 빨리 한국에 주문해서 먹도록 해 봐야겠어요.”하더니 얼마 있지 않아 박권사 딸도 드디어 임신해서 딸을 낳았다고 한다. 산딸기마냥 올망졸망 달린 작은 빨간 알맹이 안에 생명을 잉태하는 귀한 선물을 품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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