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gn Up For Subscribe

Register your email address to receive our weekly e-letter and social media updates to your email.

이레터 무료 구독신청

음력, 양력 그리고 전자 달력

호주에서 음력설 행사는 이제 대표적 다문화주의 축제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1월 1일 및 음력설 외에도 다른 날을 새해 첫날로 반기는 민족들이 상당수다.

아무튼 달력의 역사는 수만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동물 뼈에 자국을 남겨 날짜를 셌고, 이 같은 관습은 달과 별, 태양 등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해 작성되는 달력으로 발달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달력은 고대 로마력에서 발전한 것이다.

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4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정벌에서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를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가장 우선적인 것이 바로 달력임을 인식했다.

당시 로마인들이 사용하고 있던 누마력은 한 해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서,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즉, 당시 누마력은 어떤 해는 355일이고, 또 어떤 해는 382일이 되다 보니, 세금을 내는 입장이나, 또는 관리의 임기가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게 돼 사회가 불안했던 것.

이런 불안을 잠재우고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달력을 개혁하기 위해서,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집트 태양력…율리우스 달력

<그레로리우스 달력을 선포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2천여 년 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포한 율리우스 달력의 특징은 바로 윤년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미국 북아이오아 대학교의 역사학자 토마스 학키 교수의 설명이다.  

“초기 태양력의 문제점은 대체적으로 1년의 길이가 짧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가 갈 수록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가 계절상으로 맞지 않게 됐다. 율리우스 달력이 중요한 이유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정기적으로 날짜를 수정했다는데 있다.  바로 4년 마다 한번씩 윤년을 둔 것이다.”

즉, 실제 1년의 길이는 365. 25일인데 1년 365일이 정확하지 않아 4년마다 한 번씩 하루를 더해서, 366일로 정했던 것.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 각 달의 이름은 로마 고유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고대 로마 달력에서 새해 첫 달은 군신 마르스(Mars)의 이름을 딴 마르티우스 (Martius),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달, 또는 ‘땅과 바다를 여는 이’란 의미를 가진 아브릴리스(Aprilis)가 2월, 봄의 여신 마이아(Maia)의 달을 뜻하는 마이우스(Maius)가 3월, 결혼과 출산을 관장하는 최고의 여신인 유노(Juno)의 이름을 딴 유니우스(Junius)가 4월, 그리고 다섯 번째 달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5월, 여섯 번째 달을 의미하는 섹스틸리스(Sextilis)가 6월이었다.

고대 로마 달력에서는 현재의 3월에 해당되는 마르티우스가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이었다. 

군신 마르스의 이름을 딴 마르티우스는 겨울철에 잠시 휴전에 들어갔던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던 것.

일곱 번째 달을 의미하는 셉템베르(September)는 7월, 여덟 번째 달을 의미하는 옥토베르(October)는 8월, 아홉 번째 달을 의미하는 노벰베르(November)는 9월, 열 번째 달을 의미하는 데셈베르(December)는 10월이었다.

즉, 초기 로마의 달력은1년이 열 달로만 돼 있었고 겨울철 농한기인 마지막 두 달은 아예 이름이 부쳐지지 않았다.

이후 기원전 8세기에 누마 폼필리우스 왕이 달력을 개혁하면서, 열한 번째 달과 열두 번째 달에도 이름을 붙였다.

문의 수호신인 야누스의 이름을 딴 야누아리우스(Januarius)가 11월, 한 해 마지막에 벌였던 축전 페브루아(Februa)의 이름을 딴 페브루아리우스(Febriarius)가 12월이 됐다.  

이처럼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각 달의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달력을 재정비하면서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하루라도 빨리 집정관에 취임하고 싶어서, 11월 1일을 1월 1일로 당겨서 새 달력을 공표했다.

 

8개 다리의 옥토푸스가 10월이 된 사연

이로 인해 11월이었던 재뉴어리가 1월이 됐던 것.  그래서 옥토푸스, 즉 문어는 다리는 8개이지만 옥토버는 10월이 됐고, 10번째 달이란 뜻의 디셈버는 12월이 되면서 영어 단어가 뒤죽박죽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카이사르는 더 나아가 달력 개혁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이 있는 7월의 이름 역시 율리우스(Julius)로 바꿨고, 그래서 영어로 줄라이(July)로 불리게 됐다.

율리우스에 이어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투스도 달력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다.

하여 자신의 생일이 있는 8월을 어거스트(아우구스투스)로 이름을 바꿨다.

그 밖에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는 4월을 네로네우스로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네로 황제 사후에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아 왔다.

 

유럽과 아프리카로 전파된 율리우스 달력

기원전 46년에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포한 율리우스 달력은 1천5백여 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매우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 달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부활절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춘분이 지난 뒤에 보름달이 뜬 이후의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해 왔는데 16세기에 이르자 달력에 쓰여있는 춘분과 실제 춘분이 열흘 이상이나 차이가 나게 된 것.

미국 북아이오아 대학교의 역사학자 토마스 학키 교수는 1582년  10월5일부터 10월 14일은 지구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열흘과 함께 등장한 그레고리우스 달력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밤에 잠자리에 든 로마인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10월 15일 금요일 아침에 깨어났다고 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계절에 맞춰 과감히 달력에서 열흘을 없앤 것.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윤년 규칙도 바꿨다. 4백 년 동안 1백 번 지내던 윤년을 97번만 지내도록 조정했다.

하지만 이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전 세계로 배포된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해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가톨릭 국가들은 즉시 새 달력을 받아들였다.

개신교 국가였던 영국은 1752년에 이르러서야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1752년 9월 2일에 잠든 영국인들은 열흘 이상을 뛰어넘어 1752년 9월 14일에 깨어났던 것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1700년, 일본은 1873년, 러시아는 1918년에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인들은 고종 황제 시절에 내린 조칙에 따라,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하면서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사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려 열흘 이상을 건너 뛰었지만 세계로 보급된 그레고리우스 달력 역시 문제점이 있었다.

즉, 1년을 365.24일로 계산한 것도 반올림한 결과이며, 소수점 이하의 시간이 쌓여서 수만 년이 지나면, 달력과 계절의 변화가 또 맞지 않게 된다.

이처럼 여전히 오차가 있다는 점 외에도 윤년 계산이 복잡하다는 점, 매년 날짜와 요일이 변한다는 점, 각 달의 길이가 다르다는 점, 또 새해 첫날이 천문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 역시 그레고리우스 달력의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은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대신할 새로운 달력을 제안해 왔다.

1849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1년이 열세 달이고, 1달이 28일인 달력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럴 경우 매월 1일은 언제나 일요일, 각 달의 마지막 날인 28일은 토요일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달력은 서양 사람들이 싫어하는 13일의 금요일이 매달 온다는 점에서 반발에 부딪쳤다.

또한 1930년에 미국의 엘리자베스 아켈리스는 1월, 4월, 7월, 10월 등 각 분기의 첫 번째 달은 길이가 31일이고, 그 외의 달은 30일로 하는 세계 달력을 제안했다.

여러 가지 안이 나왔지만, 그 어떤 달력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함에 따라 여전히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전 세계 표준 달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Tags: 

clearblockeleven

clearblockeleven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