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gn Up For Subscribe

Register your email address to receive our weekly e-letter and social media updates to your email.

이레터 무료 구독신청

[발행인 엽서] 다양성에 기초한 통합과 관용의 ‘미학’

종교적 자유와 종교적 차별의 경계선에 대한 논쟁이 호주 사회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호주 사회는 다양성에 기초한 통합과 관용의 미학을 사회적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아 왔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실제로 다양성에 기반을 둔 통합과 관용은 국가 번영의 기틀이었고 세계 역사 주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우리 조국 정부에는 더욱 심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음을 거듭 인식하게 됩니다.

1년 6개월 전 고국 정부로부터 ‘무보수 명예’직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아세안 지역 부의장 직을 임명 받은 후 7개 협의회의 행사를 위해 모두 21차례의 출장을 통해 12개 국가를 방문해야 했습니다.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었고, 때로는 “이토록 사서하는 고생이 과연 내 조국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결집에 얼마나 가시적 효과를 안겨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여러차례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38년 거주하면서 마음 속 깊이 체험하지 못했던 다양성의 심대함을 역사적, 지정학적 관점에서 인식했고,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경구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세안 지역회의 산하의 30여개 국가에 잔재한 서방열강의 ‘유산’을 통해 통합과 관용의 ‘미학’을 되새기게 된 것입니다.

세계사적으로 종교적 불관용, 문화적 탄압, 민족적 차별은 제국의 흥망을 갈랐고 그 잔재는 아시아 태평양 역내의 다양한 국가에 여전히 스며든 가운데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적 다원성으로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는 결국 타종교를 탄압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종교적 다원성을 포기하자 종교적 대립과 반목이 분열과 내란을 불러 멸망했던 것입니다.

15세기 이후 ‘무적함대’를 앞세워 세계 해상권을 장악했던 스페인. 

“스페인 영토에서 해가 지는 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세계를 제패했지만 가톨릭만을 고집하다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습니다.

스페인의 종교탄압을 피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한 이교도들은 인구 200만의 네덜란드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조차 어려워 국권을 영국이나 프랑스로 넘기려고 했던 소국 네덜란드는 건국헌장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면서 유대교도와 개신교도 등 이른바 스페인 등으로부터의 종교난민을 적극 수용한 것입니다.

개신교와 유대교와 함께 기술과 자본이 유입되면서 상업적 번영은 정점을 향했고, 1600년대에 들어 동인도회사에 이어 서인도회사를 세워 세계무역 독점체제 구축과 더불어 세계해상권을 제패하게 됩니다. 

인구 200만의 자그마한 ‘해저 왕국’이 이처럼  세계의 대국이 된 것은 통합과 관용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사실을 세계사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앞서 세계를 정복한 몽골이나 17세기부터 시작된 영국의 식민정책도 표면적일지라도 포용과 관용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21세기의 호주는 성적 다양성과 더불어 또 다른 단계의 종교적 관용을 표방하고 있는 시점이 됐습니다. 

그리고 세계사의 한 중심에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우리의 조국 역시 통합과 관용의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Tags: 

clearblockeleven

clearblockeleven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