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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프레디 머큐리, 27기 맞아 세계 전역서 ‘부활’

불후의 명곡 ‘진짜 전설’ 일생 그린 보헤미안 랩소디

불후의 명곡 ‘진짜 전설’ 프레디 머큐리가 세계 곳곳에서 부활하면서 팬들의 마음을 찡하게 흔들고 있다.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감독 브라이언 싱어) 열풍이 이 밴드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고, 지난 24일 그의 27주기를 맞아 절정에 달했다. 

노래의 리듬과 멜로디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고스란히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행동으로 표출했던 프레디 머큐리는 4옥타브를 오르내린다는 광폭의 음색과, 공연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격정적인 무대 매너로 청중들의 가슴을 온통 헤집기 일쑤였다.

영국 록밴드 ‘퀸’의 리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1946~91년)의 일생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다루면서 그는 세계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

 

영혼을 두드리는 명곡의 향연 '보헤미안 랩소디'

 '영국에는 두 명의 여왕이 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퀸'(QUEEN)의 위상을 단번에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퀸'의 전성기는 단연코 마성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한 시기다. 그가 에이즈로 사망하기 전 '퀸'은 록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숱하게 뽑아냈다.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한 소절만 들으면 '아 이 노래'하는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뜨거운 사랑을 받는 '퀸'의 결성과 명곡 탄생 뒷이야기, 멤버 간 갈등과 화해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관객을 찾아온다.

지금도 '퀸' 멤버로 활동 중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영화 제작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 리얼리티에 힘을 실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영혼을 울리는 퀸의 음악과 프레디 머큐리다.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스', '돈 스톱 미 나우'(Don't Stop Me Now),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등 줄줄이 이어지는 명곡의 향연은 귀를 즐겁게 하고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익숙한 멜로디가 귀를 파고드는 순간 가슴 한편이 먹먹해 오면서 시대를 초월한 명곡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불후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 탄생의 비하인드

불후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 탄생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롭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카펠라·발라드·뮤지컬·오페라·하드록 등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과 난해한 가사로 유명하다.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멤버들은 그의 요구대로 노래를 부르면서도 도통 어떤 곡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고.

영화에서 로저 테일러가 '갈릴레오' 부분만 스물여섯 번이나 부르다 지친 나머지 "젠장 도대체 갈릴레오가 누군데"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후 수많은 비평가와 팬 역시 그와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레미 말렉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프론트맨'(무대 전면을 누비는 사람)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전담 코치까지 두고 그의 몸짓과 표정을 연구했다.

영화에 삽입한 노래는 대부분 프레디 머큐리 목소리지만 레미 말렉 역시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실제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프레디 머큐리 사생활과 관련한 부분은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양성애자였던 프레디 머큐리는 이 문제로 항상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성 정체성 문제는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주제지만 '퀸'의 멤버가 제작에 참여한 때문인지 이 부분은 얼버무린 감이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모든 것을 실제적으로 묘사해 더 큰 감동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프레디 머큐리의 외모에 대한 관심도 증폭시켰다.

그의 얼굴을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국인과 매우 다르기 때문.

 

아프리카 출생의 프레디 머큐리

그의 출생지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이다.

인도 서부 구자라테 출신인 그의 부모가 영국의 식민지 관리로서 잔지바르로 이주했던 것.

잔지바르는 1505년 이후 포르투갈 식민지를 거쳐 아라비아의 해양국가 오만의 식민지로 노예거래의 중심지로 존속했다.

토착 아프리카 문화에 이슬람 문화가 더해지고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 문화, 그리고 영국인이 데려온 인도인의 문화가 뒤섞인 복잡한 문화적 배경이 있는 지역이다.  

프레디는  8살 때인 1954년 인도로 보내져 뭄바이 근처의 영국식 기숙학교에서 1963년까지 10년 가까이 지냈다. 어려서 아프리카와 인도 문화를 고루 체험한 셈이다.  

 

고대종교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던 인도인 부모

프레디의 삶을 정리하면 할수록 복잡하다. 영국 식민지인 인도가 부모의 고향이다.

고대 페르시아계 종교로 인도에선 소수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집안 출신이다.

영국의 또다른 식민지인 동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관리로 일하던 부친 밑에서 자랐다.

토착 아프리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한 잔지바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인도 뭄바이 인근의 영국식 기숙학교에서 다녔다. 종족, 문화, 종교, 언어 등 모든 것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1964년 영국에서 독립한 잔지바르 술탄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인도계와 아랍계를 탄압하자 프레디의 가족은 이 섬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에 정착한 프레디는 영국 국적을 얻었으며 1970년 결성된 록그룹 퀸에 들어가서 가수의 길을 걸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프레디는 결국 영국인으로 살게 됐다. 그는 영국 문화의 일부로 편입되는 수준을 넘어 현대 영국 록음악 문화, 더 나아가 세계 문화를 창조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는 91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다문화, 다종교 시대의 선구적 인물

아무튼 프레디 머큐리는 다문화와 다종교 시대를 앞서간 아이콘으로 평가된다.

모든 인간이 차별 없이 뭉치는 문화융합 힘을 보여준 인물이다.

이번에 나온 영화 ‘보헤미안 랩렙소디’가 다양한 문화가 뒤엉킨 배경 속에서 영국인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프레디의 삶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고, 그는 분명 세계 곳곳에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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