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gn Up For Subscribe

Register your email address to receive our weekly e-letter and social media updates to your email.

이레터 무료 구독신청

[문학 강계형] 부용산 시인 박 기동 선생님

선생님! 

그렇게 건강하시고 활발하셨던 선생님께서 혈압으로 쓰러져 파라마타 양로원의 그늘진 병실에 몸져누워 계시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신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늘나라로 가신지 어언 10여년이 넘었으니 참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나 할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저는 아련한 추억과 상념들로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17년 생 이시니 살아 계시다면 금년에 101세가 되시겠네요.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한동안 금지됐던 이 구전가요의 작사자가 바로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숱한 고난과 좌절과 회한의 세월들을 뒤로 한 채 조용하고 평화스런 호주 땅에서 저희들과 함께 오래오래 동고동락하실 줄 알았는데..... 

소월의 진달래꽃과 함께 한국적 애상과 서정의 대표적 가곡인 부용산.

 

여순 반란사건이 발발했던 1948년에 작사 작곡되어 우리 현대사와 더불어 영과 육을 함께 했던 이 노래는 선생님의 일생만큼이나 기구했다고 할까요.

한반도 서남지역에서 전설처럼 민요처럼 번져나갔지만 이 노래의 출처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이 노래는 다시금 세상에 나와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전남 여천군 돌산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전남 벌교에서 보내셨습니다. 뜻한바 있어 소년시절을 저 광활한 만주 벌판에서 방황하였고 청년시절엔 일본의 관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셨으며 곧 이어 30세엔 순천 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셨습니다.

꽃다운 누이동생이 시집 간지 얼마 안 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오빠 박 기동은 부용산 기슭에 동생을 묻고 발길을 옮기면서 이 유명한 노래 부용 산 노래 말을 지으셨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 노래의 2절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장장 52년의 세월이 걸렸었지요. 노래 말 2절을 지으시고 소년처럼 즐거워하시며 저의 집으로 달려오신 박 기동 선생님. 불초 소생이 바로 그 자리에 선생님과 그 노래 말을 음미하며 함께 토론했던 탓에 그날의 추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 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외로운 학처럼, 고고한 선비처럼, 아니 이 땅의 이방인처럼 표표히 살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선생님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우리들은 한동안 선생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려 합니다.

매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젊은이들도 하기 어려운 요가를 2시간씩 하시며, 스스로 생식을 해서 드시고,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험준한 블루 마운틴의 계곡을 돌아 동호인들과 함께 등산을 하셨던 그 인내와 집념과 절제와 용기에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남아있는 우리들의 귀감이요 훌륭한 모범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늘,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언정 신세를 지지 말라고 충고하셨습니다.

사람이란 진실 되고 약속을 잘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타이르셨습니다. 

또 이 세상의 소인배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그 은혜를 원수로 갚는 세태를 슬퍼하셨습니다.

학처럼 선비처럼 표표히 살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선생님!

그립습니다.

부디 천상에서 평안을 누리소서.

 

Tags: 

clearblockeleven

clearblockeleven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