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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숙희] 라운드어바우트와 양보문화

호주에서 처음 운전할 때 한국과 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라운드어바우트(roundabouts or rotaries)가 많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Give way’(양보)라는 교통표지판을 흔히 볼 수 있다. 1960년대 영국에서 먼저 도입돼 미국, 호주 등 주로 선진국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제도는 호주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진입할 때 오른쪽 차에게 먼저 양보 하라는 원칙이다. 호주와 한국은 운전 방향이 다르니 한국에서는 물론 왼쪽 차에게 먼저 양보해야 할 것이다. 이 교통시스템 차이를 소통적 측면에서 한국과 호주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읽게 된다.

라운드어바우트는 기계 조작에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운전자의 규칙을 따르는 양식에 더 비중을 둔다. 호주 와서 처음엔 적응이 안돼 이런 시스템이 너무나 위험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교통신호가 없어 운전자가 이 양보라는 규칙을 무시하고 운전하면 대형 사고가 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와 교통 사거리 제도(traffic light intersections)와 비교해 어떤 시스템이 더 나은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 있지만 대체로 라운드어바우트 시스템이 더 안전하고 공간 사용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점이 적어도 서양사회에서는 있다고 입증됐다고 한다.

또 오른쪽에 양보하는 사람은 또 어떤 경우에든지 반드시 상대방의 양보로 배려 받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 규칙은 공정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서양의 공정성(fairness)이 잘 적용된 시스템이다. 더욱이 소통의 관점에서 둥근 모양의 시스템은 직선이나 사각 모양보다 훨씬 서로를 배려하고 상호 소통하기 쉬운 점이다.

영어문법에서 ‘양보’로 번역되는 단어는 ‘Concession’이라 한다. 이 단어는 ‘양도하다’라는 뜻의‘Concede’동사에서 나왔다. 즉 다른 사람에게 이양한다는 대인관계적 측면이다. 영어 문법에서 양보는 바로 ‘although, despite, even if, while’ 등인데 항상 부정적 평가와 긍정적 평가가 동시에 들어간다. 즉 내가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전에 항상 긍정적인 평가가 먼저 수반돼야하는 기가 막힌 협상의 도구이다. 내 의견을 낼 때 상대방의 다른 의견도 인정해주는 언어적 도구이다.

영어쓰기를 잘하나 못하나 판단하는 기준이 여러 측면이 있지만 양보는 인용과 함께 상대방 즉 읽는 이를 배려하여 만족시키기 위해서 쓰는 중요한 언어적 도구이다. 호주대학에서 양보(Concession)와 인용(Referencing)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면 아무리 학생의 의견이 훌륭해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바로 이 양보를 기교있게 잘 이용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사람이다.

한번은 미국에 내 분야의 유명 저널에 페이퍼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이 됐다. 그 이유인즉 내용도 좋고 구조도 다 좋은데 다른 사람의 업적을 인정하는 양보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는 코멘트였다. 나의 이론은 호주에서 개발된 새 영어교수법이라 그 당시 미국학자들이 잘 모를거니 내가 아주 독창적인 연구라는 논조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때 완전 극단의 긍정(Affirmation)과 부정(Denial)이 대화를 막아 버리는 얼마나 나쁜 소통 방법인가를 호되게 배웠고 양보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Concession’이라는 단어는 또 영어에서 ‘면허’또는 ‘특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주로 경제적으로 약한 자 즉 학생들이나 연금 해당자에게 발급되며 교통비, 의료비 등을 감면해주는 자격증을 말한다. 결국 호주는 양보가 일상화돼 사회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라는 것을 이 영어 단어를 통해서 볼 수 있다. 

라운드어바우트에서 나타나듯이 호주인에 비해 한국사람들은 소통하는 방법이 서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남편은 한국에서 최고 학벌을 나온 사람인데 상당히 자신의 세계 속에 살아(Intrapersonal) 결혼 내내 많이 힘들었다. ‘내가 No하는데 왜 난리냐’는 것이다. 다른 식구의 의견은 안중에 없었다. 그런 남편에 비해 나는 소통적이라(Interpersonal) 생각했는데도 호주 직장에서 수퍼바이저가 나보고 ‘네 세계 속에서만 산다’고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즉 소통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나도 호주인에 비하면 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현재 탄핵사태 이후 많은 한국사람들 간에 갈등이 심화됐다. 심지어 30년지기의 친구 우정을 깬 경우도 있다. 서로의 이견만 내세우고 양보를 않고 상대편이 의도하는 바를 수용(Acceptance)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인터넷 댓글에 서로 공격하는 언어 폭력을 보면 한국이 과연 문화 선진 국민인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 탄핵사태를 둘러싼 이슈들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양보 불감증을 유감없이 경험할 수 있다.

넓은 직선 대로를 쭉 달리면서 내 의견만 내며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사고에서 라운드어바우트를 통해 옆으로 보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도 해주고 또 양보도 받으며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여유를 가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양보’라는 단어가 ‘give away’로 쓰이던 ‘concession’으로 약자에게 주는 특권이든 또는 상대방의 다른 의견도 존중하는 것으로 쓰이든 소통의 아교로 더 많이 쓰여 양보 문화가 빨리 정착되면 훨씬 나은 사회가 될텐데하는 생각을 라운드어바우트를 달리면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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