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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서 만끽하는 고국의 진한 맛] 제1부 남북 훈풍 타고 열기 뿜는 ‘냉면’

무더운 여름에 냉면을 즐기는 식성은 이념이나 정치 체제와는 무관하다.

남북한인 모두가  계절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냉면.

지난 4월 27일 판문점회담 만찬에서 남북 정상이 냉면을 함께 들며 화해와 평화를 다짐한 것을 계기로 냉면집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전 세계적으로 부쩍 늘고 있다.

냉면의 쌍두마차는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다.

피란민과 함께 남하한 북녘 음식 

냉면은 이름 그대로 차가운 기운을 담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여름에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냉기로 열기를 식히는 이냉치열(以冷治熱)의 속성을 지녔겠다 싶어서다.
하지만 냉면은 본래 겨울철의 대표 음식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겨울의 시식(時食)으로 냉면을 꼽은 '동국세시기' 등의 사료를 통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차가움으로 차가운 기운을 다스리는 이냉치냉(以冷治冷)의 계절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 또한 여세추이(與世推移)런가. 냉면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변해왔다. 겨울철 북녘 음식에서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사계절 전국 음식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매콤·새콤·달콤한 맛의 다양성으로 남녀노소와 세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에게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냉면의 최대 성수기는 여름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식당마다 냉면을 찾는 사람들로 크게 붐빈다. 겨울철 음식에서 사계절 음식으로 진화하되 여름철에 더욱 사랑받는 음식으로 탈바꿈한 것. 물론 냉면의 참맛을 아는 사람은 요즘도 겨울철에 냉면을 더 즐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함흥냉면은 평양냉면과 어떻게 다를까? 
  

<남북통일농구 경기 환영만찬장에서 평양냉면이 제공되고 있다. >

 

◇ 함흥냉면 VS.  평양냉면 
 

일반적으로 함흥냉면이 비빔냉면이고 평양냉면은 물냉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국수의 재료에 있다.

함흥냉면이 감자나 고구마의 전분(澱粉), 즉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를 사용한다면,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로 뽑은 면발이 주된 재료다. 따라서 함흥냉면은 면발이 쫄깃한 반면에 평양냉면은 부드럽다.

전통적으로 함흥 지방에서는 감자의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에 홍어의 회를 무침으로 얹어 먹곤 했다. 녹말의 그 지방 사투리가 '농마'여서 음식의 이름 또한 '농마국수'로 불렸다.

이 농마국수가 한국전쟁 때 피란민과 함께 '남하'한다.

함경도 실향민들은 오장동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거처하며 농마국수로 망향의 한을 달랬다. '함흥냉면'은 남한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말로 '함흥식 농마국수'를 뜻했다. 그 사이에 주재료인 국수도 감자보다 고구마의 전분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국수와 회무침이 연출하는 별미

그럼 함흥냉면의 대표주자인 회비빔냉면을 들여다보자.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잘 삶아진 회색 국수 다발이 깔린다. 여기에 붉은 양념의 홍어회가 무채와 함께 얹혀지고, 그 위에는 가늘게 썬 오이와 달걀이 고명으로 놓인다.

어찌 보면 단출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매콤 새콤한 향기가 은근히 콧속을 파고든다. 상차림 역시 매우 간단하다. 무채김치와 육수가 전부다. 물론 음식재료와 요리방법, 상차림, 가격 등은 식당마다 다소 차이가 난다.
회비빔냉면과 함께 함흥냉면의 쌍벽을 이루는 고기비빔냉면도 그 모습이 비교적 간소하다. 회색의 국수가 붉은 양념장과 함께 올려지고 얇게 썬 소고기 편육, 오이, 삶은 달걀이 고명으로 그 위에 얹혀진다. 반 토막 난 달걀은 하얗고 노란 색감으로 시선을 끈다. 맛난 무채김치와 따끈한 육수도 밥상에 놓여 있다.
 

<회비빔냉면과 고기비빔냉면 상차림. 소고기수육, 수육간장, 무김치, 회무침이 반찬으로 놓였다 >

 

◇ 냉면 제대로 즐기기
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매콤한 맛이 일품인 함흥냉면도 마찬가지. 그 방법의 하나가 냉면 비비기다. 양손으로 젓가락을 하나씩 붙잡고 국수를 고루 비벼주면 면과 양념, 고명이 절묘하게 잘 섞인단다.

지난 50년 동안 한 냉면집에서 줄곧 일해왔다는 한국의 이병태(65) 주방실장은 "끈기가 있는 고구마 전분의 특성상 오래 두면 면발이 엉겨 붙기 쉽다"며 음식이 밥상에 놓이자마자 곧바로 비벼줄 것을 조언했다.

이와 함께 "국수에 앞서 계란 고명부터 먼저 먹어두면 좋다"면서 "면발도 가위로 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먹었을 때 본래 맛이 더하다"고 덧붙인다.
기호에 맞게 식초, 설탕, 겨자, 참기름, 양념장을 추가로 넣어도 좋다. 식초는 새콤함을, 설탕은 달콤함을, 겨자는 매콤함을 더해주고 참기름은 고소한 맛을 높여준다. 그만큼 식감이 좋아지는 것.
 

회냉면의 일등공신 육수
회냉면 특유의 매운맛을 부드럽게 다스려주는 일등공신은 밥상 주전자에 담긴 따끈한 육수다. 소고기와 사골을 넣고 4시간가량 끓여 만든 담백한 맛의 이 육수는 냉면을 먹기 전에 살짝 마셔두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이를테면 입가심 효과. 물론 냉면을 먹는 도중이나 다 먹고 나서 마셔도 차가워진 속이 따뜻하게 풀리고 냉면 맛도 한층 살아난다.
실제로 매콤하고 새콤하고 달콤하기까지 한 냉면에다 수육이나 만두, 회무침까지 곁들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 함흥냉면 65년 역사의 서울 오장동 거리

서울 오장동에는 65년 역사를 자랑하는 두 개의 함흥냉면 식당이 있다.

'오장동함흥냉면'과 '오장동흥남집'이 바로 그곳.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인 1953년부터 함흥냉면을 만들어오고 있다는 이들 식당은 1대 운영자인 한혜선(타계)·노용언(타계) 할머니가 모두 흥남 출신의 피란민이라는 점 등에서 닮았다.
오장동함흥냉면의 경우 한 할머니에서 아들 문성준(타계)·손자 문요환(38) 씨까지 3대째 이어지고 있다.오장동흥남집은 노 할머니에 이어 며느리 권기순(78)·손자 윤재순(58) 씨가 3대째 가업을 물려받고 있다. 1981년 문을 열었던 신창면옥은 아쉽게도 지난해 폐업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녘의 피란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속초, 부산 등 남쪽 땅에 임시로 터를 잡았지만 고향길이 막히자 살 길을 달리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오장동 등지에 함흥냉면을 앞세운 식당을 차려 생계를 꾸려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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