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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권기섭] 블랙타운 시니어들

펜리스행 시티행 전철은 바람을 가르며 연실 오고간다. 블랙타운에도 하늘 찌르는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다. 축복의 땅에 자리 잡아 보려고 땅을 밟고 지나는 사람들. 만국의 장이라도 되는지 각양갹색의 인종들이다. 이름에 걸맞게 아프리카 쪽에서 온 흑인들이 마음 놓고 살고 있는 ‘흑석동’이다.

100세 시대라고 해서 70을 바라보는 한국 어르신들은 괜히 바쁜 척 힐끔거리며 다닌다. 뒷짐질 나이인데도 건강 식품 영향인지 탱글탱글하다. 바지 길이가 길어지고 근육도 예전 같지 않지만 노인 축에 들지도 못하고 마음은 분주하다.

블랙타운은 그전 같지 않아 은근히 생활하기가 좋다고 하는데 그래도 저쪽에서 볼 때는 변방인지라 신경쓰지 않고 우리끼리 팔팔하게 뭐라도 움직이는 게 맞다고 해서 축구하기에는 힘에 부치고 잘못하면 쓰러진다고 사방에서 말리고 어정쩡한 꼰대들이 사는 재미에 단물 빠지면 끼워주는데도 없어서 외로움이 달라 붙지 못하게 우리 한번 뭐하나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던 차 차 한잔 하면서 슬며시 족구 얘기 꺼내니 가슴들이 뛰더라. 노인네들 뭐하나 조신하게 하는 게 있나 하는 핀잔이 두려워 내놓고 하지도 못하고 알음알음 만들었네.

지역사회 터줏대감 비슷한 처지라 서로 조심하며 잘하든 못하든 서로 떡이 되어 감싸주고, 칭찬하여 서로서로 엔도르핀 생기는 세월 한번 살아보자 이런 뜻으로 한 달에 두 번 모여 운동한다.

모이는 날 기다려진다는 소리에 즐거움이 팍팍인데 혹시 누가 찬물 끼얹을까봐 서로 서로 똘똘 뭉치고 있다.

운동 끝나면 타이 식당, 월남 국수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잘한다 잘한다 추켜주는 회원들 소리에 천혜의 조건인 마라용 테니스장 사용하는 예약도 하고 하얀 머리인데도 즐겁게 일하는 나는 총무라 해도 문제 없는데 굳이 회장으로 추켜 세우니 기분이 그게 아닐세.

허이 허이 한 날이 자꾸만 늘어나는 외국 땅인지라 비바람쳐도 모이자고 하는 운동이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친교의 장이다.

매주 모이자 하는 이도 있는데 모든 관계 오가는 주말 문화 접어버리고 매주 족구한다고 부산 떨며 좋아할 사람 몇 안 된다고 머리 쓰는 꼰대들이다.

서로의 살아온 길을 존중하며 못한다고 핏대 세우는 거 없고 그저 두 시간을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는다. 우리 변방의 꼰대들 대접해주는데도 별로 없고 오라고 손짓하는 이도 점점 줄어드는데 이거하다 여기서 마음 상하면 보따리 싸서 따끈따끈한 곳 찾아 어디론가 가야하는 안 그래도 지 바람에 생기는 성질 못 부리고 사는데 시드니 바닷바람 찾아 갈텐가 말이다.

속 빈 강정같이 비우고 모여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세상이지 내 생각이 항상 맞는 거 같아 못마땅한 인상으로는 끼여들 곳이 있든가 말이다.

우리 공차고 쓸데없는 군대 얘기나 폼나게 떠들다 재미있다 하자고요.

그래서, 술 안 마시고 정치 얘기 안 하고 종교 얘기도 하지 말자 해서 그러자고 하고 쭉 가고 있다. 블랙 타운을 떠날 생각이 없는 꼰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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