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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엽서] Filial piety(효도)…Parenthood(양육책임)

새해 벽두 십계명의 제4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Thou shalt honor father and mother)는 성경구절을 되새겼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에는 왜 ‘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문구는 없는 것일까요?

아마도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공경심보다 더욱 원초적인 인륜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현실은 인륜과 역행하고 있습니다. 인륜의 근본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들이 너무도 비일비재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지난해 고국에서 발생한 ‘어금니 아빠’ 사건에 고준희 양 사건에 이르기까지 인륜을 저버린 인면수심의 부모들이 자행한 엽기적 사건으로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해외동포사회가 격분하고 허탈해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식의 효도와 부모의 자녀 양육 책임에 대한 등식 성립 여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유교적 문화가 지배적인 고국 국민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자녀 양육 책임보다 오히려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효심을 강조해온 것이 바람직했는가의 여부에 대해 사회학자들의 연구가 있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한편, 합리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호주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효도에 대한 개념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성경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과 우리가 지닌 효도의 개념과는 분명 괴리감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효도는 영어로 ‘filial piety’로 표현될 수 있고, 이는 분명히 서방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효도 정신은 ‘공경’보다 더 높은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 한국인들에게 부모의 ‘양육권’(custody)이라는 용어는 매우 친근감이 있지만 양육책임(parenthood)이라는 말에는 비교적 낯설어 합니다.  

호주의 경우 양육권보다 양육책임을 우선시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자 법적 잣대라고 판단됩니다. 한국인 부모의 경우 양육책임에 대한 개념에는 각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양육권에는 오히려 목숨을 거는 듯 합니다.

결국 이런 현실이 일부 부모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녀를 “귀엽고 어여쁜 소유물” 쯤으로 여기게 되는 경우로 이끌게 됩니다.

이럴 경우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해”라는 섬뜩하기만 한 아주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결국 고국에서 펼쳐진 인면수심 부모의 처참하고 끔직한 자녀 학대의 출발점이 되는 듯 합니다.

물론 호주에도 자식을 제대로 양육하지 않는 개차반 수준의 부모가 많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수준 미달의 부모들은 아예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많은 한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부모만큼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는 없다”라고 자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오래 거주한 한인들의 시각에 비친 대다수 호주인 부모들의 자녀 사랑은 우리 한국인 이상이면 이상이지 그 이하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호주의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parenthood’에 대한 토론 위주의 교육은 매우 보편화돼 있지만, 과연 한국에서 이에 대한 교육은 어느 정도 이뤄지는지는 회의적입니다.

반대로 한국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 교육은 평생교육이지만, 호주에서 효도 교육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대칭적 상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고국 교육계가 ‘parenthood’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2018년 새해에 가슴에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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