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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차혜란] 신문안 세상

 여름처럼 덥다가 겨울처럼 추워지는 이번주는 정말 변덕스럽다. 대개 새벽 여섯시를 전후로 눈을 뜨는 나는 아침 온도의 체감에 따라 하루의 시작을 달리한다. 좀 따뜻하면 운동을 나가고 춥다 싶으면 책이나 신문을 읽는다. 아주 이른  2~3시쯤에 잠이 깨면 글을 쓰거나 조용히 눈을 감은 체 다시 잠이 찾아주길 기다리기도 한다. 글이 써질 때는 3시간쯤이 되는 것도 무의식이다. 특별히 발표할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기 같은 일상적 기록이고 때로 불쑥 떠오른 어떤 상념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다. 감기가 오는 것 같아 올리브리프 엑기스를 조금 마셨다. 몸으로 스며들던 한기가 차단되며 새벽 고요는 기분을 최고로 유지 시킨다.

전원을 누르고 신문을 읽는다. 대충 타이틀을 훑는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신문을 읽어왔다. 그것도 광적으로, 세상이 궁금했다. 절반은 세상적 호기심이고 절반은 그냥 습관이다. 아무튼 내 인생은 신문과 더불어 살아온 것 같다. 처음 호주로 이민 왔을 때는 교민지나 신문은 물론, 인터넷도 없던 때라 나는 특별히 한국 신문을 일주일분씩 묶어 공수해 읽었다. 일종의 신문중독, 그러나 그 중독이 주는 매혹은 세상을 만나는 재미였다. 신문을 펼 때의 인쇄 냄새와 궁금증은 언제부터인가 새벽 신문을 읽기 위해 눈이 떠지곤 했다.

신문은 세상을 만나는 첫번째 수단이고 다방면의 세상 뒤지기에 그만한 재료가 없다는 여학교 문예반 선생님의 말이 내 가슴과 머리를 단박에 붙들었다. 나는 그날의 선생님 목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다. “신문 안 세상” 이란 하얀 칠판 글씨를 초크로 톡톡 두드리며 “어휘를 늘리는 방법이고 문장력을 키우는 지름 길이기도 하지,” 라고 했던 그 진지한 목소리를..... 이 동기부여는 중 3때였다. 신문 읽기가 공부 차원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키운 90프로라 믿는다.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이건, 내 글이 읽히건 아니건, 내겐 문학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애매하고 피곤한 생각들이 헉헉 거리며 머릿속을 흔들 때나 답답하고 무료할 때 신문을 읽으면 나는 금방 편해진다. 광적 행복이다. 교양이나 사회성, 또는 학문적 가치가 아니어도 내가 살아온 인생적 경험을 보완해 주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예를 들면 나는 신문을 통해 위대한 사람들의 사상과 철학을 접했고, 세상의 악과 선에 대해서, 세계 정치와 역사를, 문학적 필요와 갈증을, 돈의 추함과 잔인함, 그럼에도 절대 가치의 필요함, 사회면의 잡다한 사건들과 얽힌 세상사, 세계 속 다른 문화권 얘기들, 그 신기하고 희한한 풍습들, 사설의 명 문장들, 기다리게하는 신문소설 재미, 주식의 곡선, 환율의 널뛰기, 부동산 투기와 혼란, 권력속의 패자와 승자들, 그들의 신뢰와 배반, 헷갈리는 세상 법칙들, 아이히만과 홀로코스트, 유대인의 학살 이유등을 읽으며 나치 시대의 그 억울한 죽음들을 알았다. 사설 읽기는 세월이 겹쳐도 내용과 관계없이 언제나 내겐 훌륭한 문장의 소리들로 가슴을 뛰게했다. 그 빛나는 문장들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언제나 사설속 논리들은 내게 감동을 안기는 단어들로 넘친다. 

신문 연재 소설들, 별들의 고향, 흙, 불타는 신전, 자유부인등을 읽으며 최인호란 젊은 작가, 이광수, 정연희를 알고 그들의 재능에 환호 했다. 최인호씨의 고 2 때, 신춘문예 당선은 내 가슴을 얼마나 설레게 했던가! 영국의 소더미 경매장, 그 유명한 크리스턴 킬러 사건, 아키히토와 미치꼬의 만남과 결혼, 게이샤의 전통, 옛 중국 풍습의 죽은 남편을 위한 강요된 애첩의 사자동행, 여자 애기들의 전족 잔인함도 신문에서 만났다. 찰스 황태자가 12살 때 팝에 들어가 술 마신 얘기 까지… 신문 읽기는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재미와 호기심을 채우는데 일등 공신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원하는건 뭐든 찾을 수 있지만 내가 청춘이던 60, 70년대는 책이나 신문을 통해 각자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밖에 없었으니 참 아득한 얘기다. 신문만큼 다양한 내용의 매체가 없을때의 얘기니 디지털 시대의 요즘엔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차혜란 / 글무늬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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