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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크리스찬 뉴스] 하나님의 심장으로 일본을 품은, 박종필 목사와 임미정 사모

 

일본사람의 손에 의해 부모를 잃고 자란 아픔의 세월이 지나고, 20여년전 일본으로 선교를 떠나겠다는 외아들, 박종필 목사.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의 사역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심장으로 그들을 함께 품은 박 목사의 아버지로 부터 시작됐다.

항일독립투쟁을 하신 할아버지를 둔, 경영학도에 운동권 출신이었던 박 목사에게 왜 하필 일본인가?라는 주변사람들의 질문은 일본선교를 시작한지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자의 첫 질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박 목사 부부는 하나님 앞에 왜?라는 질문은 없었다 답한다.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이곳이 맞는지 언제인지를 물으며 하나님의 길을 따를 뿐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시드니 집회중 말씀을 전하는 박종필 목사.)

톱미디어 본사를 방문한 박종필 목사 가족을 만나봤다.

박 목사 가족은 4일 평안교회(김찬일목사)를 시작으로 5일 시드니연합교회(우병진목사), 시드니성결교회(권병만목사), 8일 시드니수정교회(송영민목사), 10일 시드니응답기도원(윤영화원장), 11일 시드니교회(형주민목사), 12일 시드니교회(형주민목사), 구세군한인교회(강태석목사), 시드니주안교회(진기현목사) 15일 시드니순복음(김범석목사)까지 시드니에서 바쁜 일정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바로 지금, 이곳

박종필 목사 부부는 한국 CCM의 1세대라 불리며 한해 150여 이상 집회에 참여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던 찬양사역자였다. 현재는 임 미정 사모와 안나양이 찬양사역자로 사역을 하고 박 목사는 목회활동 및 앨범 제작과 사역 기획 등에 집중하고 있지만 당시 CBS 복음성가 경연대회 동상을 수상하며 찬양사역자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일본으로 선교를 떠나는 며칠 전까지도 박 목사 부부의 예배사역 스케줄은 빡빡했다.

바로 지금이란 마음을 주셨고 일본어로 인사말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곳,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 현지 성도들이 있는 교회에서 부부는 그저 함께 찬양하고 예배와 성도를 위해 꿇어앉아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언어적인 문제로 많은 사역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가질 수 있었던 그 몇년의 기간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며 진심으로 일본을 품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시간이었다 박 목사는 고백한다.

7년씩 1,2기 사역으로 총 14년의 일본 사역을 마치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점검의 시간을 가지고자 한국으로 향했다. 당시 일본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었고, 사역 역시 찬양사역자로 또한 목회자로 많이 확장되어 있었을뿐 아니라 초등학생이 된 딸 안나가 친구들도 많이 사귀며 학교 생활도 즐겁게 했었던 때로 주변에서 모두가 만류했던 상황.

호주에서 이민자 생활을 하면서 가족이 함께 짐을 싸고 타지로 향하는 것이 얼마나 큰 선택인지 알기에 기자 역시 계속해서 어떻게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박 목사는 “삶의 터전을 쉬이 정리하고 이곳저곳을 향하는데 있어서 몸이 많이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는 그 길에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영이 자유롭기에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지금 이순간 그분과 동행할때 충만한 은혜의 삶이 됩니다”고 답했다.

3년동안 한국에서 지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답을 받고 다시금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갑작스럽게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 상태로 다시 찾은 일본 땅에는 이미 주님께서 안나 학교부터 머무를 거처까지 모두 예비해 놓으셨다.  

 

 찬양을 드리는 삶, 삶이 찬양

“잘 지내고 있나요(오겡키데스까, お元気ですか).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와타시와 겡기데쓰, わたしはげんきです)” 일본어를 몰라도 이 대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러브레터.

특히 아름다운 영화 속 배경과 잔잔함과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은OST는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러브레터의 OST 에 참여한 마사키 이와모토(Masaki Iwamoto)가 임미정 사모의 4집의 편곡을 맡았다. 일본은 아직 찬양사역자 혹은 CCM가수라는 개념이 부족해 크리스천 대중 가수들이 뜻을 모아 기독교 음반에 참여하는 정도다. 음반 제작사 및 기획사 등의 관계적인 부분 때문에 참여도도 낮은 편이다.

(함께 찬양으로 섬긴 임미정 사모와 안나양.)

특히 마사키 이와모토는 일본 대중가요사에서 인정받는 음악가로 한국에서 온 선교사의 CCM음반에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울면서 찬양을 드리는 ‘울보 선교사’로 불리는 임미정 사모는 인터뷰 중에도 사역 속 감격스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보였다.

성악을 전공한 임 사모는 85년 제4회 극동방송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찬양 사역을 시작했다. 지금은 음악적 장르로도 인정받는 CCM은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

특히 클래식 장르의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시기였던 만큼 대중 가요와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부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몇차례 경고를 받기도 했고, ‘찬양하는 사람들’이란 팀으로 활동할때는 성악창법 때문에 음색이 튀어 애를 먹었다.

다양한 장르의 창법을 연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은 과정은 일본에서 한곡에서 여러색깔의 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된 밑거름이 됐다. 내년에는 임 사모의 찬송가 음반이 발매될 예정이며, 딸 박안나(Anna)씨도 CCM 가수로 음반 준비에 한창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힘든 시기였지만 그 걸음 걸음 속에서 주님은 지금의 소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불안정한 두려움 보다는 그저 찬양을 할 수 있는 감사함이 가득했습니다. 감사하다는 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고 임 사모는 말했다.

임 사모는 이번 앨범에서 부른 찬송가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고 건강 등으로 인해 성대에 무리가 있어 음악적인 두려움도 컸다.   

“하나님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찬양을 드리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찬양사역자로 음악적인 기술 등 욕심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 찬양이 되고 찬양이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찬양이자 사역인 것 같습니다”고 임 선교사는 설명했다.  

  

 죽으면 죽으리라

어느날, 예배중 할머니 두분이 힘겨운 몸을 가누며 박 목사에게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울며 미안하고 또 이렇게 와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때 받은 충격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박 목사는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인 목사 부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수퍼를 갈때 시간을 몇 시간씩 여유를 두고 갈때가 많다는 임 사모는 꼭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게 그리고 함께 느끼게 된다고.

박 목사 부부는 매달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에 방문한다.

“생각하시는 것 보다 위험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나님을 전합니다. 누군가 꼭 가야 한다면 우리 가족을 보내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혹여 그로인해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또한 큰 은혜일 것입니다. 감당할 만큼의 사역을 주신 주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면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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